“찰스 다윈의 진화이론 이후 우리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과학적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인 우리 자신에게 동물로서 권리가 있다면, 모든 동물에게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이치로 보아 맞는 말이다.
동물들에게도 지성과 감정이 있다. 비록 그들이 인간만큼 이성적이거나 언어를 갖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은 동물들보다 단지 조금 더 이성적일 뿐이다. 이런 차이 하나로 동물들에게 권리가 없다고 하는 말은 옳지 않다. 불과 1만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구석기에 살았다. 동물들과 자연에 같은 생활을 하였다. 인간이 동물과 얼마나 다르기에 인간에게 동물을 학대하고 생명권을 박탈할 권리가 있는가. 동물의 생과 사를 결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그저 동물들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있을 뿐인지는 아닌지 고민하여야 한다.
“인간이 이제껏 언어와 이성적인 사고, 도덕적 양심의 힘으로 거의 모든 동물을 물리쳐왔음은 철학자나 과학자들에게 인정되어 왔다.
뿐만 종교적으로 봐도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의 구약성서에서도 인간은 동물 위에 있고 이를 다스릴 뿐만 아니라 이용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진화이론은 자연은 피비린내 나는 참혹하고 냉정한 세계이며 그래서 가장 강한 자, 가장 무자비한 자가 생존의 투쟁에서 살아남는다고 말하고 있다. 동물이 먹이사슬의 최고위치인 인간의 생존 수단임을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권리가 있고 동물은 질적으로 인간과 다르므로 동물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건 터무니없는 말이다.
만약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면, 박테리아나 모기에게도 생명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떤 존재가 권리를 부여받기 위해 반드시 의식이 있거나 인지능력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나 혼수상태의 아이도 권리, 특히 생존의 권리가 있다. “권리”란 우리가 부여하기로 한 어떤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우리에게 자연 자원을 이용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연 세계를 지배하는 종으로써 사회적으로 책무를 다한다는 의무감과 인간의 이웃인 동물을 돌보고자 하는 의무감이 균형 잡힌 때에만 인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고 믿는다. 이타심, 배려심, 희생과 같은 가슴을 뭉클하게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들이 약자를 배려해주고 많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었고 그 안에는 인권 존중 또한 포함된다. 동물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자를 보살펴 주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생명체에게 우리 또한 그들의 권리를 부여함이 합당하다.
동물들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타적일수 있음을 잊지않길 바란다. 돌고래의 경우 숨을 쉬지 못하는 동료가 있으면 자신들의 몸으로 받쳐주어 숨을 쉬도록하는 동료애를 보여준다.1) 흡혈박쥐는 배고픈 동료에게 자신이 흡혈한 피를 나눠준다.2)
“동물의 의식은 인간이 가진 의식과 같은 종류가 아니다. 동물은 사람과 비슷하기보다는 오히려 기계적 행동을 하는 모습에 더 가깝다.”
동물은 이성적 사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능적, 반사적 모습으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정당함이라거나 공정함, 책임, 그런 의무를 이행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런 생명체에게 인간의 감정과 비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비탈거미의 어미는 자기 몸을 갓 태어난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는 모성애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절지동물이 인간의 잣대로 생각하여 모성애가 강하다고 판단하는 게 이성적인가? 오히려 인간의 도덕성으로 새끼거미를 바라본다면 어미를 해치는 후레자식이 아닌가?3)
동물에 대한 가상의 권리에 관한 주장들은 냉정하고 과학적인 면에서 볼 때, 동물과 인간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잘못된 근거를 두고 있다.